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자경(子敬). 호는 퇴휴당(退休堂). 아버지는 부호군 현승(顯昇)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부호군 사걸(士傑)의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예가 뛰어나 10여세에 ' 금의공자전 金衣公子傳 '과 ' 백옥루기 白玉樓記 '를 지었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증광시에 갑과로 급제, 사서(司書)를 거쳐 예조좌랑, 개령현감 등을 지냈다. 1689년 다시 성균관전적으로 등용되어 과거의 시관이 되었고, 이어 호당 겸 춘추관기주관(湖堂兼春秋館記注官)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관직에서 물러나 퇴휴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이현일(李玄逸), 권두경(權斗經) 등과 학문을 강구, 연마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퇴휴문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