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언휘(彦暉). 호는 성재(誠齋). 어려서부터 과거시험에는 뜻을 두지 않고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을 통독하면서 문장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윤증(尹拯)의 문하에 들어가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당대의 석학이던 김창협(金昌協)과 학문에 관한 토론을 벌이면서 그 명성을 떨쳤다. 1682년(숙종 8) 대신들의 천거로 창릉(昌陵)과 영릉(英陵)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뒤에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제수되어 잠시 부임하였으나, 얼마 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승진되자 다시 사양하고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연구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