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정원(柳正源)
  • 전주유씨(全州柳氏),  출생~사망 : 1703 ~ 1761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순백(淳伯). 호는 삼산(三山). 안동 출신. 아버지는 석구(錫龜)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천린(天麟)의 딸이다. 1729년(영조 5) 생원시를 거쳐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오랫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749년에 성균관전적을 거쳐 자인현감(慈仁縣監)이 되어 백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이듬해 홍문록에 올랐다. 1751년 3월 안동에 귀향하여 윤광소(尹光紹)와 함께 향음주례(鄕○酒禮)를 실시하고, 여강서원(廬江書院)에서 회강(會講)하였다. 1752년 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고, 그뒤 수찬에 여러번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54년 필선이 되었고, 이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보도에 능력을 발휘하여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같은해 수찬, 사간을 거쳐 교리에 임명되었다가, 통천군수로 나가서는 백성의 진휼에 힘썼다. 1756년 원인손(元仁孫)과 채제공(蔡濟恭)의 추천으로 부교리가 되어 조정에 돌아온 뒤 왕의 특명으로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758년 춘천현감에 부임하였다. 1760년 형조참의, 동부승지, 우부승지, 판결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였다. 그뒤 대사간, 호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젊어서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섭렵하였고, 천문(天文), 지지(地志), 음양(陰陽) 등을 비롯하여 병률(兵律), 도가(道家)에 깊이 침잠하였으나, 유학의 본지는 사서삼경에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깊이 탐구하였다. 경학에 능하고 여러 학자들의 주석에도 밝아 으뜸가는 경연관으로 영조와 여러 신하들의 신임을 받았다. 문집으로 '삼산문집', 저서로 '역해참고 易解參考', '하락지요 河洛持要'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