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성덕왕 때의 관리. 관등은 대아찬(大阿飡). 김윤충(金允忠) 이라고도 한다. 김유신(金庾信)의 손자이며, 김삼광(金三光)의 아들이고, 아우는 김윤문(金允文)이다.
725년(성덕왕 24) 천재지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선종의 뒤를 이어 중시(中侍)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733년(성덕왕 32) 당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이르기를 발해를 치고자 하니 신라도 군사를 보내어 치도록 하되, 김유신의 손자 윤중이 있다 하니이 사람을 꼭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성덕왕이 윤문 등 세 장군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당병과 함께 발해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큰 눈이 와서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편, 성덕왕은 김유신이 통일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여 가까이 하였는데, 무열계 왕족으로부터 심한 견제와 반대에 부닥치게 되어, 그뒤 가야계(加耶系)의 신김씨(新金氏)는 점차 정치적 지위를 잃게 되었다.
725년(성덕왕 24) 천재지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선종의 뒤를 이어 중시(中侍)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733년(성덕왕 32) 당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이르기를 발해를 치고자 하니 신라도 군사를 보내어 치도록 하되, 김유신의 손자 윤중이 있다 하니이 사람을 꼭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성덕왕이 윤문 등 세 장군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당병과 함께 발해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큰 눈이 와서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편, 성덕왕은 김유신이 통일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여 가까이 하였는데, 무열계 왕족으로부터 심한 견제와 반대에 부닥치게 되어, 그뒤 가야계(加耶系)의 신김씨(新金氏)는 점차 정치적 지위를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