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총(金𤧚)
  • 광산김씨(光山金氏),  출생~사망 : 1633 ~ 1678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명보(明寶) 또는 중휘(仲輝). 호는 우헌(迂軒). 아버지는 김광술(金光述)이며,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임경진(任慶進)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진사시에 합격했다. 1660년(현종 1) 승문원정자에 제수된 후 저작, 박사를 거쳐 1666년 의금부도사, 예조좌랑을 역임하고, 1667년 우현감으로 외직에 나갔다. 1673년에 중앙관에 복귀하여 성균관직강,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홍문관수찬, 사헌부장령, 집의(執義), 지제교(知製敎), 지공거(知貢擧) 등을 역임하였다. 1678년(숙종 4) 차왜접위사(差倭接慰使)로 동래에서 왜사(倭使)의 예경(禮敬)을 받았다. 그는 시문에 능하여 '창랑대기 滄浪臺記' 등 다수의 시문을 남겼으며, 옥구현감 시절에 지은 여러 편의 기우문(祈雨文)은 우국애민의 충심이 엿보인다. 저서로는 '우헌문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