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경세(景世). 호는 죽석(竹石). 대제학 유신(有臣)의 아들로, 고조 종태(宗泰)가 영의정, 증조 명균(命均)이 좌의정, 할아버지 지수(志修)가 영의정으로 직계가문에서 3대에 걸쳐 정승이 나온 명문태생이다.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에 장원, 1790년 성절 겸 사은사(聖節兼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함경도암행어사로 나갔다. 이어 규장각직각에 제수되었다가 1792년 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794년 호남위유사(湖南慰諭使)로 나갔으며, 그뒤 승지를 거쳐 황해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나갔다. 1804년(순조 4)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그 이듬해 예조판서에 승진하였다. 1805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대호군(大護軍), 홍문관제학,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1808년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비국유사당상(備局有司堂上)을 겸직, 심상규(沈象奎)와 더불어 '만기요람 萬機要覽'을 편찬하였다. 그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평안도관찰사, 규장각제학, 이조판서, 대제학, 통제사,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 기순(箕淳)도 뒤에 대제학에 올라 아버지로부터 부자손 3대가 대제학을 지내는 가통을 세웠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수원의 지지대비(遲遲臺碑)비문을 짓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죽석문집', '풍악기 楓嶽記', '교초고 交抄考', '어사고풍첩 御射古風帖' 등이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