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가상(可象). 호는 취촌(醉村), 명발와(明發窩). 제윤(齊尹)의 아들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어려서는 큰아버지인 대곡(大谷)에게 수학하여 시에 능하였으며, 여러번 향시에 합격하였다. 50세를 전후하여 당한 부모의 상에 거상(居喪)의 절도가 엄하였으며, 이후 벼슬길을 단념하고 이재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 서명(西銘), 태극도설 등의 공부에 골몰하였다. 이재가 죽자 3년간 심상(心喪)을 행하였다. 1691년(숙종 17) 학행(學行)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천거,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그해 가을에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에 제수되자 '일흔 넘어 첫 벼슬이지만 원량(元良: 왕세자) 한번 뵙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고 벼슬에 나아가, 왕세자에게 '서경'을 진강(進講),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뜻을 상설하여 세자의 칭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