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천주교도. 교명은 누가. 자는 성눌(聖訥). 예산 출신. 국보(國輔)의 손자이며, 양한(亮漢)의 아들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상경하여 최초의 영세교인 이승훈(李承薰) 등과 교유하였으며, 1784년(정조 8)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정언, 전적 등을 지낸 뒤 1791년 신해박해 때 배교(背敎)를 하였으나 신공(神功)과 대소재(大小齋)는 지켰다.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보례(補禮)를 받고 고해(告解)를 준비하던 중 한영익(韓英益)의 밀고로 교도임이 탄로나자 다시 왕명으로 배교를 선언하였으나, 여전히 교칙(敎則)을 지키고, 1799년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이승훈, 정약종(丁若鍾)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