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준흠(姜浚欽)
  • 진주강씨(晋州姜氏),  출생~사망 : 1768 ~ ?
조선 후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삼명(三溟). 아버지는 세정(世靖), 어머니는 권세억(權世檍)의 딸이다. 1794년(정조 18)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지평, 교리 등을 지냈다. 1805년(순조 5)에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죽음을 알리는 고부사(告訃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13년에 수안군수로 있을 때 군적(軍○)의 폐단을 논하고 새로운 화폐의 주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부사직을 거쳐 1817년에 사간이 된 뒤 승지에 이르렀다. 벽파(僻派)의 일원으로 1801년 윤행임(尹行恁)의 축출에 앞장섰으며, 1813년 정약용(丁若鏞)의 석방을 반대하였다. 또, 남인의 영수 채제공(蔡濟恭)을 비난하였다. 시무에 밝아 여러번 어사 물망에도 올랐다. 서예에 능하여 금석문을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