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쌍계(雙溪).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 안직(安直)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판의금 호(滸)의 딸이다. 1429년(세종 11) 종제인 이보흠(李甫欽)과 동방급제(同榜及第)하여 한림, 직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고 아우인 종겸(宗謙)과 우애가 독실하여 문종이 효우당(孝友堂)이라는 당호를 내려주었다. 세조가 즉위하여 이보흠과 내종인 유성원(柳誠源)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용인 남곡(南谷)으로 돌아가 이맹전(李孟專), 김시습(金時習) 등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여생을 마쳤다. 1786년(정조 10)에 광주(廣州) 대치사(大峙祠)에 봉향되었고, 1804년(순조 4) 안성 덕곡(德谷)에 정려문이 세워졌으며,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추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