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소요당(逍遙堂). 아버지는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숭례(崇禮)이다. 1447년(세종 29) 녹사(錄事)로서 친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대교(待敎)가 되자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여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4년(단종 2)에 주서(注書)에 제수되었으며, 1455년 세조 즉위에 협조하여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고, 1457년(세조 3)에 호조좌랑에 승진하였다. 1460년 낭청(郞廳)으로서 가자(加資)되었으며, 이듬해 사인(舍人)이 되고, 이해에 문신월과(文臣月課)에서 시부(詩賦)로 장원하였다. 1463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로 옮겨 좌익위(左翊衛)로서 제주경차관(濟州敬差官)에 임명되어 제주도에 침투한 왜인들의 노략질을 막고 그들을 회유하여 보내는 등 민정에 힘썼다. 1478년(성종 9) 대사성이 되어 국가교육을 주관하였으며, 이듬해 예조참의가 되었다. 1480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곧 사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