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유(崔濡)
  • 전주최씨(全州崔氏)
조선 초기의 문신. 진명(進明)의 손자이며, 여달(汝達)의 아들이다. 1421년(세종 3) 부사직에 임명되고, 그뒤 여러 관직을 거쳐 1451년(문종 1) 전농소윤(典農少尹)이 되었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첨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다. 1462년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 1465년 춘방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7년 반란을 일으킨 이시애(李施愛)와 서신을 교환하였고, 아들 윤손(閏孫)이 적당(賊黨)에 가담하였다 하여 대신들의 처형 주청(奏請)을 받았으나, 세조는 공신이라는 이유로 윤손 만 처형하였다. 1471년(성종 2) 대간이 소급 처형하기를 아뢰었으나 성종은 ' 세조 때에 치죄하지 않은 것을 지금에 와서 추론할 수 없다.'고 하면서 윤허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