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좌의정 덕부(德符)의 아들이며, 태조의 차녀 경선공주(慶善公主)의 남편이다. 1398년(태조 7) 8월에 청원군(靑原君)으로 봉하여졌다가 그해 다시 청원후(靑原侯)로 개봉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청원군으로 봉하여졌다. 같은해 이방원(李芳遠)이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 여말구신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간(芳幹)을 도와 난을 성공시킨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는 또한 동복형제 사이에 일어난 방간과 방원의 싸움인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는 중립적인 처신을 하였기 때문에 무사하였다. 그러나 1416년(태종 16) 전주에 유배중인 방간과 은밀히 사통하면서 선물을 받은 것이 탄로나 벼슬이 깎이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자원안치(自願安置)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