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전라도관찰사 유(柔)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사관이 되었고, 1447년(세종 29)에 북부녹사(北部錄事)로서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년) 예문관대교 재직중에 기생을 간음한 일로 사헌부 로부터 '국상중에 간음하였다.'는 탄핵 뒤 변진에 입거되었고, 이듬해 자원부처(自願付處)되었다. 세조의 즉위와 함께 복직되어 승문원부교리, 청주판관을 역임하였고, 1472년(성종 3) 승문원교리로서 예종부묘사(睿宗○廟事)에 집사로 참여하여 그 노고로 1계를 가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