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사유(崔士柔)
  • 삭녕최씨(朔寧崔氏),  출생~사망 : 1372 ~ 1455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휘지(徽之). 호조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의 아들이다.

1399년(정종 1) 생원시,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09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1414년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었는데, 이때 질이 나쁜 종이를 납궐(納闕)한 죄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1432년(세종 14) 사간원좌헌납이 되었다. 이듬해 상정색녹사(詳定色錄事) 한유린(韓有隣)과 책봉도감녹사(○封都監錄事) 허완(許完)에게 7등급을 초과하여 참직(參職)을 제수하자, 3등급을 초과할 수 없는 초천법(超遷法) 규정을 들어 이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누천(累遷)하여 성균관사예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퇴거하여 경사를 읽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뒤에 수직(壽職: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은전으로 주는 벼슬)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