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형백(亨伯). 호는 괴당(槐堂). 지의정부사 첨(詹)의 현손으로, 부장(部將) 철권(鐵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윤선(金潤璿)의 딸이다. 1537년(중종 32)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고 권지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 1544년 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의정부사인에 발탁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8월 사헌부장령으로 체직, 장령 권물(權勿), 지평 이잠(李湛)과 함께 '좌의정 홍언필(洪彦弼)은 대신으로 합당하지 못하니 파면시키라.'고 한 논핵으로 인하여 우의정 이기(李○)의 배척을 받고 그해 10월에 삭탈관직되었다. 1547년 9월 양재역의 벽서사건 때 다시 이기의 무고를 받아 영해부에 유배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 10월 신정(新政)을 위한 신원(伸寃)으로 관작을 환급받았다. 현달하지는 못하였으나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학문으로 사림간에 명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