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필휴(匹休). 호는 남정(南亭). 총제(摠制) 수(穗)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우정언, 지평, 장령을 역임하였다. 1432년에는 사헌부집의로 있으면서 조말생(趙末生)이 탐오한 신하라고 하여 그의 등용을 막는 상소를 올렸다. 1433년에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를 거쳐서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좌승지를 역임하였고, 1441년에 충청도도관찰사, 1444년에 공조참판, 1445년에 예문관제학, 1446년에 판한성부사, 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같은해에 성절사(聖節使)로서 주문사(奏聞使) 김하(金何)와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뒤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각종 방물(方物)을 가지고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왔고, 그해 우참찬이 되었다가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호조판서가 되었다. 1453년 늙었음을 이유로 사직하려고 하였으나 다시 중추원사가 되었다. 그가 죽자 나라에서는 2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관곽(棺槨)과 종이 100권을 부의(賻儀)로 내렸다. 시호는 안성(安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