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상치(曺尙治)
  •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자경(子景). 태사(太師) 계룡(繼龍)의 후손으로 전객령(典客令) 수(隨)의 증손이며, 좌정승 익청(益淸)의 손자이고 강계병마사 신충(信忠)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최중연(崔中淵)의 딸이다.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재감주부(司宰監注簿)가 되었다. 1424년 좌정언에 임명되고 집현전에서 유숙하였으며, 세종, 문종, 단종 3대를 섬겨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총애를 받았다. 1455년(단종 3) 집현전부제학에 발탁되었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791년(정조 15)단종의 장릉(莊陵)에 배향되고, '노산조부제학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曺尙治之墓)'라 새긴 묘비를 세워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혀 충의를 기렸다. 그의 시문은 임종시에 모두 소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