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윤부(潤夫). 덕부(德符)의 증손이다. 척리(戚里)로서 발탁되어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이어서 세조 즉위에 큰 공을 세운 홍윤성(洪允成)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어 예조참의를 비롯한 육조의 요직을 맡았다. 1464년(세조 10) 경기도관찰사에 부임하였는데, 권력을 농단하고 공무를 소홀히 하여 대간들의 탄핵을 받고 좌천되기도 하였다. 그뒤 중추원부사로서 하정사(賀正使)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서 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질병으로 사임, 오위의 부호군이라는 한직에 있다가 죽었다. 일찍이 풍양에 정자를 지어놓고 산수와 음률을 즐겨 망세정(忘世亭)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당시 이맹전(李孟專), 원호(元昊) 등과 겨룰 만큼 고매한 기품을 지녀 처사를 자처하였다. 뒤에 장릉(莊陵) 조사단(朝士壇)과 옥과에 있는 구암사(龜巖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