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융(朴融)
  • 밀양박씨(密陽朴氏),  출생~사망 : ? ~ 1424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유명(惟明: 國朝榜目에는 惟仁). 호는 우당(憂堂). 익(翊)의 아들이다. 1408년(태종 8) 생원시를 거쳐 같은해에 병과로 급제했다. 문한(文翰) 계통의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411년에는 정언(正言)이 되었다. 같은해 12월 6일에 있었던 취각(吹角) 때에 간관들이 어떤 이유에 의해 모두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간관 전원이 면직처분을 받게 되었는데, 그도 사간 정준(鄭悛), 헌납(獻納) 정지아(鄭之雅)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그뒤 재서용(再敍用)되어 전한(典翰)이 되었지만, 1418년에는 윤림(尹臨) 등 25인과 함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고, 직첩이 환수되었다가 곧 재서용되었다. 1423년(세종 5) 1월 강원, 황해, 평안도에 지난해의 기근으로 인해 기민이 크게 발생하자, 해당지역 수령들의 진제(賑濟) 상황파악을 위해 경차관을 파견하였는데, 그도 이조좌랑으로 강원도에 파견되었다. 그뒤 경외(京外) 여러 관직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우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