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용보(勇甫). 호는 행헌(杏軒). 이미(李美)의 아들이며, 이인형(李仁亨)의 아우이다.
1465년(세조11) 진사가 되었고, 형 인형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이 되어 면학에 힘써 경전(經典)에 조예가 깊었다. 1466년 세조 어전(御前)에서 오기(吳起)가 지은 '오자병서 吳子兵書'를 강의하였는데,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여 군직(軍職)을 특서(特敍)하고, 시위(侍衛), 전령(傳令), 부신(符信)을 출납하는 선전관을 겸직하게 되었으며, 이어 경상어사(慶尙御史)에 임명되었다. 세조는 의형과 문과에 장원급제한 그의 형 인형을 궁중에 불러들여 우악(優渥)한 대우를 베풀었고, 중외(中外)의 기무(機務)를 자문하였다. 1477년(성종 8) 창평군수로 있을 때 문과에 병과로 등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1482년 집의가 되었다.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 서울 연경에 갔을 때에는 황제로부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하사받았다.
1465년(세조11) 진사가 되었고, 형 인형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이 되어 면학에 힘써 경전(經典)에 조예가 깊었다. 1466년 세조 어전(御前)에서 오기(吳起)가 지은 '오자병서 吳子兵書'를 강의하였는데,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여 군직(軍職)을 특서(特敍)하고, 시위(侍衛), 전령(傳令), 부신(符信)을 출납하는 선전관을 겸직하게 되었으며, 이어 경상어사(慶尙御史)에 임명되었다. 세조는 의형과 문과에 장원급제한 그의 형 인형을 궁중에 불러들여 우악(優渥)한 대우를 베풀었고, 중외(中外)의 기무(機務)를 자문하였다. 1477년(성종 8) 창평군수로 있을 때 문과에 병과로 등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1482년 집의가 되었다.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 서울 연경에 갔을 때에는 황제로부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