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여헌(汝獻). 호는 창랑(滄浪). 할아버지는 군수 남궁치(南宮致)이고, 아버지는 생원 남궁순(南宮順)이며, 어머니는 감찰 최돈(崔敦)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489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같은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왕명을 어긴 죄로 추국(推鞫)되고, 1495년(연산군 1)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를 역임하면서 1497년 문신정시에 1등을 차지하였다. 이듬해 홍문관부응교가 되었으며, 1499년 의정부사인, 지제교 겸 승문원교감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504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외방에 나갔으나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489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같은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왕명을 어긴 죄로 추국(推鞫)되고, 1495년(연산군 1)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를 역임하면서 1497년 문신정시에 1등을 차지하였다. 이듬해 홍문관부응교가 되었으며, 1499년 의정부사인, 지제교 겸 승문원교감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504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외방에 나갔으나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