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곽은(郭垠)
  • 선산곽씨(善山郭氏)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안부(岸夫). 아버지는 생원 기(琦)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校)로 등용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에 지평이 된 뒤 헌납, 전적, 장령을 거쳐 1484년에는 전설사수(典設司守)가 되었다. 그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그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했으며 오래도록 기신제(忌辰祭)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南孝溫)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이이(李珥)도 그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