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수덕(樹德). 세우(世佑)의 아들이며, 약해(若海)의 아버지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정자, 저작, 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점점 광포하여지자 경연에서 만날 때마다 풍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눈물을 흘리고는 하였다. 함창현감에 배수되어서는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시(詩), 예(禮)로 다스려 풍속이 변하였다. '성종실록' 편찬에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고,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스스로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고 종음(縱○)하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