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선택(宣澤). 연성군(蓮城君) 정경(定卿)의 아들이다. 1422년(세종 4) 음직(蔭職)으로 남부녹사(南部錄事)에 제수되었다. 이후 세자우시직(世子右侍直),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 대호군(大護軍) 겸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상서원소윤(尙瑞院少尹)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첨지중추부사로 원종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면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1457년 중추부사가 되고 다음해 사은사 김세민(金世敏)의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 열무(閱武)때에 보인 무재(武才)로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다. 1461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면서 행상호군(行上護軍), 이어 행첨지중추부사,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65년 원각사제조(圓覺寺提調)로서 원각사의 조성을 지휘하였다. 1467년 행의정부좌참찬(行議政府左參贊)에 임명되었으나, 대사헌 양성지(梁誠之) 등의 반대로 취임하지 못하였다. 1468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승진되었으나, 남이(南怡)의 옥사에 연루된 사위 조경치(曺敬治)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470년(성종 1)다시 서용된 이후 행상호군, 의묘조성제조(懿廟造成提調),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역임하였다. 이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산릉도감(山陵都監)과 선공감(繕工監)의 제조를 겸하였다. 성품이 민첩하고 해서(楷書)에 능하였으며, 영선(營繕)에 공이 있었다. 시호는 평호(平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