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세민(金世敏)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1401 ~ 1486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백공(伯恭). 아버지는 개성유수 겸(謙)이다. 정종의 둘째딸 숙신옹주(淑愼翁主)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다. 1418년(태종 18) 부지돈령부사(副知敦寧府事)가 되었고 이어서 동첨지돈령부사(同僉知敦寧府事), 상호군(上護軍),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역임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병조참의, 형조참의를 거쳐 1437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충주목사에 제수되고, 광주목사를 거쳐 1442년(세종 24) 한성부윤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외직으로 나가 황해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47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이듬해 48세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곧 뇌물수수 혐의로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되었다. 문종이 즉위하여 직첩과 고신(告身)을 환급해주었다. 지돈령부사, 한성부윤, 개성유수를 거쳐, 문종이 죽자 고부 겸 청시사(告訃兼請諡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7년(세조 3)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중추원사(中樞院事), 인순부윤(仁順府尹),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1460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고,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제수되었다. 70년 동안 벼슬하면서 7조(七朝)를 보좌하였다. 천성이 온순하고 단아하여 일생동안 성을 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시호는 양평(良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