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응(吳凝)
  • 함양오씨(咸陽吳氏),  출생~사망 : 1422 ~ 1470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명수(冥受). 호는 금남(錦南). 치인(致仁)의 아들이다. 1457년(세조 3) 별시문과에 장원하고, 좌정언(左正言)을 거쳐 1467년 함길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왜구가 해안지방에 쳐들어온다며 연안의 백성들을 산으로 피난시키는 등 민심을 어지럽혔다. 난이 끝난 뒤 민심을 어지럽힌 죄로 임실에 유배되었다가 예종 때 다시 서용되어 한성부좌윤,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