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서선(徐選)
  • 이천서씨(利川徐氏),  출생~사망 : 1367 ~ 1433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대숙(大叔), 언부(彦夫). 호는 해화당(海華堂).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현령 서원(徐遠)의 아들이다. 원천석(元天錫)의 문인이다.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역임하고, 1404년(태종 4) 형조의랑(刑曹議郞) 때 설화(舌禍)로 여흥(驪興)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나, 또 계사(啓事)의 잘못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죽산(竹山)에 유배되었다. 뒤에 우사간이 되어서도 말을 잘못하여 부평도호부사(富平都護府事)로 좌천되었다.

1415년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어 동료들과 서얼의 차별대우를 진언하였다. 그뒤 예조우참의, 우대언을 거쳐, 1417년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1419년(세종 1) 고부 겸 청시부사(告訃兼請諡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윤이 되었다. 그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의 관찰사와 형조, 예조, 이조의 참판 등 내외직을 지내고, 1427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429년 판한성부사로 절일사(節日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1431년 좌군도총제가 되었다. 마음가짐이 굳세고 자신이 맡은 관직에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웠다.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공도(恭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