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경윤(慶胤). 호는 묵재(默齋). 찬성사(贊成事) 강생(剛生)의 손자이며, 교서관정자 절문(切問)의 아들이다.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박사가 되고, 부수찬, 지제교를 거쳐 사인, 집의, 지병조사(知兵曹事), 동부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로 영빈강씨(令嬪姜氏) 소생인 사위 화의군(和義君) 영(瓔)이 수양대군을 반대하다 귀양가게 되어 한때 난처한 입장에 빠졌으나, 이어 한성부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대사헌, 공조, 이조, 형조, 예조의 판서를 거쳐 밀산군(密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세조 초에 좌찬성에 승진되었고 세 차례에 걸쳐 고시관이 되어 많은 인물을 등용시켰다. 시호는 공효(恭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