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의 문하평리를 지낸 문용(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長氏)로 현령 핵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 종사관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을 때 전당문학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부양하는 것을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삼아 주, 군에 교수, 훈도를 둘 것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뒤에 공조전서에 임명되었다가 곧 호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에 향리에 돌아갔다. 조선 초기의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일으킨 공이 크다. 1395년(태조 4)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사가유교'가 있으며, 죽은지 400여년 뒤인 1842년(헌종 8)에 김제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항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