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의주만호 열(列)의 아들이다. 1388년(우왕 14) 만호로 있을 때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요동정벌에 종군하였다가, 위화도회군에 가담, 조선개국에 기여하였다. 1398년(태조 7) 중추원부사가 되고 그해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세자인 방석(芳碩)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을 살해하고, 방석의 난을 평정하는 데 협력한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뒤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지고, 이어서 첨절제사, 영흥부사를 지냈다. 성질이 거칠고 위세를 부려 조야의 빈축을 받던 중, 1399년(정종 1) 왕위를 물려주고 태상왕(太上王)으로 있던 태조를 수행하여 한양 신도에 갔을 때 등창이 생겼는데도 함부로 행동하다가 급사하였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