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양(李穰)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 ~ 1453
조선 초기의 문신. 의안대군(義安大君) 화(和)의 손자이다. 무과출신으로서 1423년(세종 5) 호군(護軍)을 역임하고 1439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그뒤 1441년 경상좌도절제사를 거쳐, 1443년 중추원부사, 동지돈령부사를 역임하고 이듬해에 충청도수군도안무처치사가 되었다. 1447년 정월 공조참판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강계도절제사를 역임한 뒤 판중추원사를 거쳐 1452년(문종 2) 우찬성이 되었다. 1453년(단종 1) 판병조사를 겸직하였고, 이어 평안도도체찰사를 거쳐 다시 우찬성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신(謀臣)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음모를 꾸며,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고 어린 단종을 보좌하던 우의정 김종서(金宗瑞)를 살해할 때 수양대군의 군사에 의해서 당시 영의정 이던 황보인(皇甫仁),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등과 함께 추살(椎殺)되었다. 수양대군 은이 10월정변으로 실권을 장악하여 1455년 단종에 이어 왕위즉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747년(영조 23)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건의에 의하여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복관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