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산보(山寶)의 손자로, 중선(仲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수(韓修)의 딸이다. 전직(殿直)으로서 1427년(세종 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사간원정원,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4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451년(문종 1) 우사간 재임 때 승문원이 중국 과의 외교문서를 전장(專掌)하니만큼 그곳 관리를 가볍게 인사 이동할 수는 없고 도리어 오랫동안 유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4년(단종 2)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고, 이해 관압사(管押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8년(세조 4) 이조참의, 이듬해 중추원부사 겸 강원도도관찰사를 거쳐, 1460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충청도도관찰사가 되고, 1462년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