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균(辛昀)
  • 영산신씨(靈山辛氏),  출생~사망 : 1395 ~ 1473
조선 초기의 문신. 균(均) 이라고도 한다. 자는 경화(敬和). 중선(中善)의 아들이다. 1418년(태종 18) 문음으로 동부녹사(東部錄事)에 임명된 뒤 지안성군사(知安城郡事), 순흥도호부사 등의 외직을 거쳐,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예빈시윤(禮賓寺尹),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노인직으로 검교(檢校) 한성부윤(漢城府尹),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검교호조참판(檢校戶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470년(성종 1) 및 성종을 보양(保養)하였던 명빈(明嬪)의 청에 의하여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곧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사평에 의하면 그가 특별한 재능이 없이 중외의 현관(顯官)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호부(豪富)에 힘입은 바가 많았다고 평하고 있다. 시호는 호이(胡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