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권제(權踶)
  • 안동권씨(安東權氏),  출생~사망 : 1387 ~ 1445
조선 초기의 문신, 학자. 호는 지재(止齋). 증조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 아버지는 찬성 권근(權近), 부인은 판사(判事) 이휴(李○)의 딸이다.

처음에 음보(蔭補)로 경승부주부(敬承府注簿)에 기용되었으나 감찰 때 대사헌의 비위에 거슬려 파면되었다. 1414년(태종 14) 친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우헌납(右獻納)이 된 뒤 병조정랑과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를 거쳐, 1416년 사예(司藝), 1418년에 사인(舍人)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집의(執義)가 되었으며, 사은사 경녕군(敬寧君) 비(○: 태종의 제1서자)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과 좌대언(左代言)을 차례로 지냈다.

1423년 집현전부제학이 된 뒤 예조판서, 대사헌, 함길도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에는 평안도도관찰사가 되었다. 1430년 경창부윤(慶昌府尹), 1432년 경기도관찰사, 이듬해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며, 1435년 이조판서, 1437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계품사(計稟使) 혜령군(惠寧君)의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그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

1439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었으며, 1442년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를 겸하여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인 신개(申○)와 함께 '고려사'를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좌참찬으로 전라도도관찰사가 되었고, 1444년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 이듬해에는 우찬성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안지(安止)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초명은 도(蹈),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