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학자. 자는 유영(有永). 호는 노송정(老松亭). 아버지는 염(廉)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로 묵(默)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하위지(河緯地), 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훈대부(中訓大夫) 성균관사예로 있을 때 단종이 손위(遜位)하자 전리(田里)로 퇴거하여 경서(經書) 연구에 전념하였다. 정자 이름을 노송정이라 하고, 자호(自號)를 망칠(望七) 이라 하였는데, 육현(六賢)에 하나를 첨가한다는 뜻이다. 뒤에 좌찬성에 증직되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남원 덕암서원(德巖書院), 순천 옥계사(玉溪祠),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그에 대한 '노송실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