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양위남(梁謂南)
  • 제주양씨(濟州梁氏),  출생~사망 : 1574 ~ 1633
조선 중기의 문신. 훈련원첨정 인용(仁容)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기(才氣)가 남달랐고 궁마(弓馬)에도 능하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서한 지 10여년 만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1610년(광해군 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이 그의 재행을 듣고 사람을 시켜 불렀으나, 권문(權門)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여 과업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안방준(安邦俊)과 더불어 강론하며 세월을 보냈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100여명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고 여산(礪山) 까지 나아갔으나 적병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북향재배한 뒤 돌아왔다. 뒤에 중부참봉(中部參奉)에 임명되지만 모친상을 당하여 상례를 극진히 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효행을 높이 평가하여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