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호봉(壺峰). 참봉 원회(元晦)의 아들이다. 이공(李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형조정랑,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을 역임하였으며, 헌납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을 논척하다가 경상도 영해부사로 좌천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돌아가 형 혁(爀), 동생 환(煥)과 한방에서 동거하면서 화락(和樂)하게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성균관직강이 되었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영천군수에 재직중 병사하였다. 초명은 향(享), 자는 광중(光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