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반백당(攀伯堂). 양경공(良景公) 서유(徐愈)의 7세손이다. 효성과 행실이 순수하고 두터웠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여막을 묘 옆에 짓고 정성스럽게 시묘를 마쳤으며, 슬픔을 못 이겨 부모의 무덤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 벼슬은 통정대부(通政大夫) 판결사(判決事)에 올랐다. 아들 서일회(徐一會)는 병자호란 대 군사들의 양식을 운송하여 나라의 공공 재정을 도우는 공을 세웠고,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