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초명은 신용(申湧). 자는 계수(季脩). 호는 하은(霞隱). 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며, 형은 신식(申湜)이고, 5대조는 세조 때의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검열이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1596년 저작, 수찬을 거쳐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뒤에 관찰사에 이르렀다. 청주의 봉계서원(鳳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의례고람(儀禮考覽), 상례통재(喪禮通載), 오복통고(五服通考) 등이 있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검열이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1596년 저작, 수찬을 거쳐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뒤에 관찰사에 이르렀다. 청주의 봉계서원(鳳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의례고람(儀禮考覽), 상례통재(喪禮通載), 오복통고(五服通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