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초명은 신원(信元). 자는 원길(元吉). 호는 구원(九○). 일찍이 남양의 홍지성(洪至誠)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박순(朴淳)이 영의정을 그만두고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그를 찾아가 다시 배우니 단연 학문에 두각를 나타내었다. 20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6년(선조 29)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등용되고 이듬해인 1597년에는 광양현감으로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그뒤 여러 벼슬을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을 때인 1613년(광해군 5)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 항론하다가 파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승지로 복직되었다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되었다. 1617년 충청도관찰사로서 권신들이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하고 대비에 대한 모든 의식을 없애려고 하자 이에 극력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1620년 지돈령부사가 되어 명나라의 사신을 안주까지 나가서 맞이하였는데 갑자기 중풍에 걸려 사직하고 돌아왔다. 1623년 인조가 반정하여 구신들을 많이 등용할 때 한직을 맡겨 정양하게 하려 하였으나 사퇴하였다. 저서로 '구원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