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제현(齊賢)의 6대손이며, 관찰사 윤인(尹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포부가 원대하였다. 그러나 장인 박팽년(朴彭年)의 죄에 연좌되어 몇년간 관직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뒤 사면되어 무반의 직을 잠시 가졌다가 천거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가 되고, 한성부참군을 겸하였다. 이어 흥덕현감, 함열현감, 창평현감을 역임하면서 향리를 잘 통솔하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그의 아들 원의 죄에 연좌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에 의하여 풀려났다. 여러번 자신의 죄가 아닌 일에 연좌되었고, 또 나이가 많아 관직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청주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