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휴숙(休叔).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여유(汝兪)이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제(禮制)에 밝았다. 1674년(현종 15)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에 자의대비(慈懿大妃)가 입어야 할 상복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 대공복(大功服)을 입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자, 유생의 신분으로 소(疏)를 올려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함으로써, 김수흥(金壽興) 등 서인 일파를 축출하게 하였다. 뒤에 남인의 천거로 1675년(숙종 1) 강릉참봉이 되고, 이어 주부를 거쳐 용궁현감(龍宮縣監)으로 나가 치적을 올림으로써 통훈대부의 품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