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형원(亨遠). 호는 기와(棄窩). 판관 충생(忠生)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세함(池世涵)의 딸이다.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으로,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 광해군 때는 혼정(昏政)으로 인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반정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내고, 정묘호란 때는 강화로 인조를 호종하였다가 환도,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감찰, 호조좌랑,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 종친부전한(宗親府典翰),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과 신창(新昌), 이산(尼山), 직산(稷山), 금산(金山) 등의 수령(守令)으로 전정(田政), 군정(軍政), 형정(刑政) 등을 두루 잘 다스렸고 노령에는 대구부사(大丘府使), 재령군수를 거쳐 치사하였다. 성품이 근엄, 검박하고 공사가 분명하였으며, 송사를 명백하게 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