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효성(金孝誠)
  • 광주김씨(廣州金氏),  출생~사망 : 1585 ~ 1651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행원(行源).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수연(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 윤인(尹○), 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고부천(高傅川), 김태우(金太宇) 등 24인과 함께 정조, 윤인, 이위경 등 3인의 목을 벨 것과 귀양가 있는 이원익(李元翼)을 다시 부를 것을 주청하였다가 길주(吉州)로 유배당하고 뒤에 진도로 이배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과 함께 복관되어 의금부도사를 제수받고, 이어 청안현감(淸安縣監)이 되었다. 1625년 잠시 관직을 떠났다가 이듬해 호조좌랑에 올랐다.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왕비를 호가하였고, 1628년에 괴산현감(槐山縣監)과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역임하였다. 1634년 한성부서윤, 형조정랑, 군기시첨정 등 중앙으로 옮겨 있다가 이듬해 여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이어 남원, 죽산의 부사와 공주, 청주의 목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청나라 사신 접대의 대책을 소홀히 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곧 칠곡부사(漆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오랜 외직생활 동안 선정을 베풀어 청빈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또한, 무예에도 조예가 있어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과 위장을 맡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