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칙우(則優). 호는 월사(月○). 예조참판 수익(壽益)의 아들이다. 병절교위(秉節校尉)로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93년에 병조좌랑이 되었다. 다음해에 순변사(巡邊使) 이빈(李○)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영남에 부임하였으나, 황해도에 귀성(歸省)했다가 기일을 어겨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5년 형조정랑으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 사성, 정언을 지냈다. 1602년 충주목사가 되었으나 도체찰사의 장계(狀啓)로 파출(罷黜)되었다. 사신(史臣)은 그를 사람됨이 부잡(浮雜)하고 회해(○諧)를 좋아하였다고 평하였다. 저서로는 '월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