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치원(致遠). 아버지는 상주목사 부(溥)이다. 송인수(宋麟壽)의 문인이다. 1537년(중종 32)에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서 행의(行義)로 의금부도사에 천거되었다.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 정언, 헌납 등 언관직에서 활동하였다. 1570년(선조 3) 동부승지에 초배(超拜)되었으며, 좌부승지에 승진되었다. 1573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75년에 황해감사를 지낸 뒤 호조참의, 병조참의, 이조참의, 도승지, 부제학 등을 거쳤다. 1579년 대사간으로서 백인걸(白仁傑)의 상소를 이이(李珥)가 대신 지은 것이 문제되었을 때, 이이를 옹호하다 대사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583년 부제학으로서 이이의 처벌을 주창하는 박근원(朴謹元), 송응개(宋應漑), 허봉(許○) 등에 동조 성주목사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