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치규(稚圭). 호는 향설당(香雪堂). 영의정 명회(明澮)의 손자이다. 1489년(성종 2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대과에 응시하지 않다가, 할아버지 명회가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원훈(元勳)이었기 때문에 음보(蔭補)로 돈령부봉사(敦寧府奉事)에 등용되어 그 뒤 돈령부정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행적을 수치스럽게 여겨 요직을 회피하고 한직에만 머물렀다. 절의로 이름이 높은 남효온(南孝溫), 홍유손(洪裕孫) 등과 어울려 시를 읊었으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시명(詩名)이 높았으며, 저서로 '향설당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