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식(李拭)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500 ~ 158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청지(淸之). 호는 손암(損菴), 외암(畏菴). 승상(承常)의 아들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검열이 되고, 1556년 경연(經筵)의 설경(說經)을 지낸 뒤 1559년 사간원정언,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 홍문관수찬, 병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61년 병조정랑이 되고, 다음해 시강원문학, 이조정랑을 지냈으며, 1563년 검상(檢詳), 사헌부집의, 1564년 사간을 거쳐 홍문관응교, 이듬해 홍문관직제학이 되어 시강관을 겸하였다. 1566년 동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형조참의를 거쳐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1568년 다시 우승지, 황해도감사를 역임하였다. 1574년 대사간이 되고 1579년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이때 동서분당이 일어나자 정희적(鄭熙績) 등과 함께 서인의 등용을 막으려는 주장을 폈다가 체직, 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다시 대사헌이 되었으나 황해도감사로 있을 때 근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체직되었다. 1583년 대사헌, 승지, 대사간, 부제학, 이조참의, 이조참판을 거쳐 행호군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외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