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천일(千一). 증조부는 한희성(韓希誠)이고, 조부는 한철증(韓哲曾)이며, 아버지는 한후기(韓後琦)이다. 외조부는 권경(權儆)이고, 처부는 박만영(朴萬榮)이다. 1673년(현종 14) 계축식년사마시(癸丑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 진사 1등에 모두 합격하고, 통덕랑(通德郞)으로 1675년(숙종 1) 을묘증광문과(乙卯增廣文科)에 병과(丙科) 9등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으며, 외직으로는 임천군수(林川郡守)를 지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 왕비 민씨(閔氏)씨가 폐비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시사(時事)와 일체의 인연을 끊고 자연 속에 묻혀 살았다.